매년 연초에는 올해의 전망이 쏟아진다. 올해의 10대 기술이나 유망분야 예측이 특히 관심을 독차지한다. 최근 몇 년간 컴퓨터공학과 관련된 분야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소셜 네트워크, 고성능 그래픽, 스마트폰 플랫폼, 클라우드 컴퓨팅등이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이들의 성공은 매우 숙련된 고급 컴퓨터 공학 전문가만이 이룰 수 있는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이다. 섭렵해야 하는 지식도 컴퓨터 구조, 알고리즘, 운영체제, 네트워크, 수학, 분산시스템 등 다양하며 수년의 집중적인 교육이 필수적이다. 과목도 많지만 컴퓨터 공학의 과목 숙제는 빈번하게 밤을 새며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므로 기피전공이 되기도 한다.
컴퓨터공학은 20세기에 새로 탄생한 신생 학문이다. 초기에는 수학의 한 분야로 인식되었으며 아직도 미국에서는 수학 및 컴퓨터분야로 통계를 내곤 한다. 초기에는 대학에서 이미 자리잡은 전기공학 내지 전자공학 전공의 확장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컴퓨터 관련 과학기술이 크게 발전하였는데 이를 반영하여 대학의 컴퓨터공학 교육을 강화하여 학과 명칭을 ECE 또는 EECS로 개편하는 학교가 크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컴퓨터공학을 독립학문으로 보지 않고 전기공학의 한 영역으로 두고 있는 체제이므로 발전성에 있어서 늘 제약과 한계가 있어 왔다. 따라서 전문화된 컴퓨터공학을 가르치고 연구함은 물론 자유로운 학문의 발전을 위하여 교육 체제를 정비한 CS 또는 CSE 체제가 등장하였으며 비로소 전문적인 컴퓨터 전문가 교육 시스템이 완성되게 되었다. 최근에는 더 나아가서 컴퓨터공학을 기반으로 여러 파생학문이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IT융합, 정보문화, 생물정보학 등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진 컴퓨터공학은 그러나 아직도 여러 분야에서 독립되지 못하고 있어서 발전이 크게 저해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이 하드웨어의 강국, 반도체의 강국이지만 소프트웨어에서는 열등한 근본원인이 여기에도 있다고 하겠다. 교육분야, 연구분야, 산업분야 분류에서 컴퓨터 또는 전산은 전통공학의 일부로 되어서 올바른 전략수립, 기획, 교육과정 정립, 연구비 수혜, 평가의 측면에서 특히 공정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컴퓨터나 소프트웨어를 경쟁국가인 중국, 인도에서 크게 지원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다행히 교육부 BK프로그램,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분야 분류, 공학교육 인증제도 등에서 전산을 독립분야로 일부 인정하고 있는 것은 큰 진전이 아닐 수 없다고 하겠다. 한국의 미래에서 과학기술만큼 중요한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제 컴퓨터공학은 파생이 아닌 기반학문으로서, 융합의 인프라로서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이므로 모든 정부의 정책, 교육연구 시스템에서 중심분야로 자리매김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대학은 극심한 입시경쟁과 취업경쟁으로 인하여, 그리고 전통과 신생학문의 조화부재 때문에 비정상적인 교육구조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 전문가는 미래의 유망직업 전망에서 양과 질에서 항상 최상위권을 자랑하지만 컴퓨터공학 전공자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이 한국의 실정이다. 더 늦기 이전에 그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고 이를 원천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글쓴이: 최양희 교수(미래인터넷포럼 의장) yhchoi@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