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붐이 갑자기 생긴 건 아닙니다. 1980년대에도 인공지능이 주목받은 적이 있어요. 사람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는 인공지능에 대한 꿈은 컸는데 당시에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금방 관심이 식었습니다. 제가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1995년에는 '인공지능을 왜 공부하느냐'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한국의 손꼽히는 인공지능 전문가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52)는 인공지능이 SF 영화 속 공상으로 치부되던 지난 몇 십 년간 꾸준히 인공지능을 연구해왔다.
장 교수는 "몇 십 년에 걸친 연구와 실패를 통해 기반이 갖춰졌다"며 "인공지능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과 로봇 같은 플랫폼도 있고,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 컴퓨팅 등 네트워크 기술이 발전해 연구 인프라스트럭처가 갖춰졌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 인공지능이 하나 하나 프로그래밍한 결과물이었다면, 지금 인공지능 연구는 사람의 뇌 신경망을 닮은 인공신경망을 이용해 경험을 바탕으로 학습해 나가는 머신러닝(기계학습)"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 말처럼 지금 다시 불고 있는 인공지능 붐은 1980년대와는 양상이 다르다. 주목할 만한 성과도 있었고, 기업들 관심도 뜨겁다. 소프트뱅크에서는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는 인공지능 로봇 '페퍼'를 내놨고, 도요타자동차는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5년간 10억달러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컨설팅 전문 업체 맥킨지는 2025년 인공지능을 통한 '지식노동 자동화'의 파급 효과가 연간 5조2000억~6조7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장 교수 연구팀이 현재 개발하고 있는 인공지능 로봇은 '뽀로로봇'이다. 그는 "뽀로로봇은 아이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질문하고 감상을 나누는 등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이라며 "특히 영어로 대화할 수 있어 외국어 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가 '상상력 기계'라고 이름 붙인 인공지능은 뽀로로 애니메이션 수백 편을 보면서 스스로 줄거리를 학습하고 캐릭터 특성을 이해한다.
장 교수는 '홈 로봇' 개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장 교수가 홈 로봇을 개발하고 있는 서울대 컴퓨터연구소 연구실은 마치 가정집 같았다. 그는 "홈 로봇은 아이들을 깨우고 시간표를 파악해 준비물을 챙겨주는 등 바쁜 워킹맘을 대신할 수 있다"며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인공지능 로봇이 스스로 정보를 읽고 활용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장 교수가 개발하는 인공지능은 사람보다 뛰어난 초인적 지능이 아니라 사람을 닮은 지능이다. 장 교수는 "사람에게 서비스하는 일은 결국 인간의 마음, 감정, 취향을 읽어야 한다"며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한국에는 인공지능을 제대로 연구하는 기업이 없다는 점이다. 장 교수는 "사용자의 검색 결과, 메일, 방문 웹사이트를 고려해 최적화된 광고와 상품을 보여주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아마존의 서비스가 바로 인공지능"이라며 "인공지능은 직접적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장하는 인공지능을 비즈니스 기회로 삼는 한국 기업이 보이지 않는다"며 "다른 글로벌 기업처럼 적극적인 연구개발과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사람의 일자리가 위협받는 일은 없을까. "고객 응대 등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사람을 돕거나 그 자리를 대체할 수는 있죠. 컴퓨터란 단어는 원래 '계산하는 사람'을 의미했어요. 그 직업은 없어졌지만 컴퓨터를 이용한 수많은 직업이 생겼듯이 인공지능도 새로운 직업과 일자리를 만들어 내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