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인력 절대 부족…美 추격은커녕 中에 잡힐 위기
"학점 구애받지 않고 배우고 시도할수있는 환경 필요"
◆ AI 혁명 / ⑦ 거꾸로 가는 서울대 컴퓨터공학 정원 ◆
"컴퓨터 관련 '고급 인력'의 절대적 숫자가 부족하다. 이대로면 미국을 쫓아가기는커녕 중국에 따라잡힐 수 있다.(박근수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학부장)"
국민적 환호와 감동을 선사한 알파고-이세돌 대국은 역설적으로 미래 먹거리 산업을 좌우할 컴퓨터공학 부문에서 한국의 인재 양성 방식이 '불계패'를 당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직된 대학 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적정 규모의 인재 확보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서울대 공대의 현실은 국가경제에 산업경쟁력 약화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심지어 지난 10년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정원이 오히려 감소하는 '역주행'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 학부정원 등 경직된 교육시스템
서울대의 컴퓨터과학·공학(CSE) 분야 학부 전공자 수는 스탠퍼드대 하버드대 등 미국 명문대에 비교했을 때 절대적인 숫자에서부터 현저히 적다. 2016년 서울대 공대 모집정원(781명) 중 컴퓨터공학부 정원은 55명에 불과해 인공지능(AI) 등 컴퓨터공학 분야 연구개발의 고급 인력 양성이 대학·학부 차원에서부터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컴퓨터공학부 정원은 컴퓨터공학부로 통합되기 이전인 1999년 90명(컴퓨터공학과)이었으나 오히려 학부로 통합되면서 인원이 매년 줄어 2000년 78명이었던 정원이 2005년부터는 55명으로 줄어 유지되고 있다.
박근수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학부장은 "컴퓨터공학 분야의 고급 인력을 원하는 산업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대학 현실은 한국 산업의 심각한 문제"라며 "대다수의 국내 IT기업들이 원하는 인재를 선발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연구인력도 절대적인 숫자에서 턱없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서울대는 국립대이면서도 법인화돼 유례없는 형태다. 학교 정원을 무조건 늘릴 수 없고 교수 숫자, 건물, 토지 등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서울대 공대 관계자는 "제약 조건을 두고 관리하는 것이 '평균'을 지향할 때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세계적 연구와 산업화로 이어지는 '선구자'를 양성하는 데는 분명한 저해 요인"이라고 반박했다.
◆ '킬러 콘텐츠'도 태부족
부족한 정원은 개설 강의·강의 인력·공간 등 교육 인프라스트럭처 부족과 질적 저하로 이어지는 실정이다. 질 높은 다양한 강의를 개설할 예산과 인력이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 최고 수준의 질을 갖춘 '킬러 콘텐츠'도 찾아보기 어렵다.
하버드대의 '컴퓨터과학 입문(CS50)' 강의의 경우 2014년 가을학기 전체 학부생의 12%에 달하는 818명이 수강 신청해 하버드대 전체 과목 중 최고 규모와 인기 강의로 손꼽힌다. 지난해 온라인공개강의(MOOC) 업체 에덱스에서 전 세계적으로 80만명이 수강하는 등 양질의 컴퓨터공학 강의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 AI 분야 권위자로 꼽히는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뛰어난 교수들이 연구나 강의에 있어서 시간을 갖고 준비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특히 학생들이 학점 등에 구애받지 않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시도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성'과 '자율성'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인재 부족→연구력 약화→산업 추종자 신세' 악순환
인력 부족 현상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핵심 산업 분야의 연구개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산업계와 학계의 경고다. 서울대 공대 관계자는 "국내 컴퓨터 인력에 비해 우수 인력은 굉장히 부족한 상황"이라며 "국내 여러 IT기업 등에서 서울대 컴퓨터 전공자를 선발하길 원하지만 한 해 배출되는 인원 자체가 산업계 수요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발간돼 자성의 목소리를 담은 서울대 공대백서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백서는 학사·석사 과정 컴퓨터 전공이 압도적으로 많은 스탠퍼드대 공대를 예로 들며 소프트웨어산업 진흥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경직된 시장 수요에 발맞춘 전공별 학생 인원 조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박 학부장은 "컴퓨터 분야는 우수 인재, 소위 '스타 플레이어'가 중요한데 국내 IT산업에 고급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호소했다.
장 교수도 "AI 연구인력이 최근에 양성되고 있긴 하지만 산업 수요에 비해 절대적으로 숫자가 부족하다"며 "이대로 가면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빨리 인력 양성에 나서야 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