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대결은 인공지능(AI)의 승리로 끝났다. 필자는 아직도 이세돌 9단이 전성기의 역량과 창의성을 발휘한다면 알파고에 질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이세돌은 졌지만 지난 10년의 세계 바둑 1인자다운 너그러움과 품격을 보였다. 이번 대결에서 룰미팅 등 불완전한 구석이 없지 않으나 이제 그런 잡음은 덮어두자. 인공지능의 승리를 흔쾌히 축하하고 찬사를 보내자.
바둑판에서 벌어질 수 있는 경우의 수 크기를 모르고는 이번 사건이 왜 대단한지 알 수 없다. 바둑에서 첫수로 두는 자리는 대개 37자리 범위 안에 있다. 이후에는 좀 늘어나지만 끝내기로 가면서 줄어든다. 한 번에 고려해야 할 착점이 대략 40개라 가정하자. 만일 컴퓨터가 1초에 1만 가지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면 첫 7수를 두는 모든 경우를 다 보는 데 얼마나 걸리겠는가?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몇 초라고 대답한다. 답은 무려 5년이다. 30수까지 다 보려면 10의 36승년을 넘는다. 둘 수 있는 자릿수를 10개로 줄여도 첫 7수를 다 보는 데만 17분이 걸리고 30수를 다 보는 데는 10의 18승년을 넘는다. 영겁의 세월이다. 바둑은 보통 200수 넘게 진행된다. 고작 30수를 보는 데 이럴 지경인데 무슨 수로 200수를 다 내다보겠는가? 결국 아주 심한 축소 탐색과 어림셈이 동원돼야 한다. 알파고도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다.
알파고가 이런 무시무시한 크기의 공간에 도전한 배경에는 최근의 엄청난 기술적 진보가 깔려 있다. 인간은 화상 이미지를 비교적 쉽게 구분하지만 기계는 쉽지 않다. 1년에 인식 에러율을 0.5% 떨어뜨리는 정도가 통상적 발전 속도였다. 하지만 2012년 세계화상인식대회인 ILSVRC에서 토론토대의 제프리 힌턴 교수팀이 에러율을 종전의 26%에서 15% 수준으로 떨어뜨리면서 우승했다. 20년의 진보에 해당하는 일이 갑자기 일어난 것이다. 여기 사용된 핵심 기술이 딥러닝(심층학습)과 GPGPU(범용그래픽처리장치)다. 이것이 딥러닝 연구를 폭발시켰다. 2015년에는 에러율이 3%까지 낮아졌다. 단 3년 만에 거의 50년 수준의 진보가 일어난 것이다.
알파고는 이 폭발적 기술 진보의 신세를 졌고, 이를 극단적 규모로 밀어붙인 것이다. 알파고가 사용하는 심층신경망은 입력의 크기만 2만5000단자가 넘고 이런 입력을 처리하는 중간 마디의 수가 830만 개에 달한다. 이들 간의 연결은 무려 14억 개에 이른다. 이런 크기의 신경망은 최근까지 훈련이 불가능했다. 알파고가 총 3000만 착점, 16만 판의 기보로부터 이 신경망을 한 번 훈련하는 데 1개월이 소요됐을 정도다.
이런 무시무시한 과정을 통해 인공지능이 인간 고유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추상적 사고를 극복했다. 이번 대국에서 알파고는 한 수에 평균 1분 조금 넘는 시간을 썼다. 논문의 내용으로 역추정해 보면 알파고가 1분에 형세 판단을 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후하게 잡아도 5억을 넘지 않을 것 같다. 5억이라면 엄청난 것 같지만 착점이 하나 진행될 때마다 고려해 볼 만한 다음 착점이 20개라면 고작 평균 6.5수, 10개라면 평균 8.5수밖에 못 본다. 결국 어림셈으로 결과를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탐색의 태생적 한계를 생각해 보면 알파고가 중반에 이미 계산을 끝낸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은 황당한 것이다.
이런 한계를 뚫어 냈다는 게 알파고가 더 대단한 점이다. 고작 그 정도의 탐색으로 인간의 최고 수준을 극복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 힘들다. 사람도 어림셈투성이다. 인공지능 프로그램보다는 훨씬 정교한 어림셈을 한다. 알파고는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어림셈의 정교함을 획기적으로 높인 것이다. 그래도 사람에 비하면 여전히 형편없다. 이것을 막강한 계산력으로 보완한 것이다. 이 결과는 한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인간의 추상적 사고라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던 것만큼 대단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
프로바둑계가 받은 충격은 대단했지만 이것은 앞으로 바둑계에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알파고는 다섯 번의 대국을 통해 프로기사들이 시도하기 힘든 창의적인 수도 보여 줬다. 프로기사들에게는 이런 수들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착상의 외연을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바둑의 수준은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이다.
이러다 몇십 년 후에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한다. 산업의 역사를 보면 방직업, 정보화 등의 초기에는 항상 일자리 침범에 대해 우려가 있었지만 결국에는 새로운 일자리들이 창출되고 인간에게 더 여유로운 생활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공존해 왔다. 딥러닝을 대표로 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우리에게 갑자기 가까이 왔다. 이제 이 기술의 기본적인 함의 정도는 상식으로 알아야 할 시대가 곧 올 것 같다. 족히 50년의 진보를 갑자기 일으킨 이 기술로 인해 우리는 우리 생애에서는 볼 수 없었을 기술적 산출물들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